찜통더위로 몸서리치던 2007년 여름.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당신을 친구로 등록한 사람이 현재 한 명도 없으니,
1개월 이내에 누군가를 친구로 등록하지 않으면 가입이 해지됩니다."
......에?!
혹시 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당시 일본 최대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 mixi라는 곳은, 오직 초대 방식으로만 가입을 허용하고 있어서 처음에 가입을 하면 나를 초대한 사람이 '마이 믹시'라는 곳에 자동으로 등록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즉, 반드시 한 명은 친구가 있단 얘기가 되죠.
mixi가 처음 생겼 때 테츠오란 일본 친구에게 초대를 받고 등록은 했지만, mixi는 방치한 채 열심히 싸이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블로그가 대세일 때는 국제 연애, 원거리 커플 등의 주제로 블로그에 홀릭하고 있었죠. 사실 그 당시 한국에도 넘쳐나는 게 블로그 미니홈피라서 믹시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던 2007년 5월 어느 날, 앞서 말씀드린 메일이 날아오고 말았습니다. 테츠오는 "cielo는 활동 안 하니까 빼버려야지"라고 가볍게 저를 제명시켰을지 몰라도, 제 친구 리스트에는 테츠오, 이 녀석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친구도 없는 정체불명 국제미아가 된 셈(-_-;;)
다시 초대해 달라고 해도 되지만 mixi를 사용하겠다는 장담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포기하긴 아까운 상황이랄까요.
"아우 짜증 나 정말! 에이, 이럴 바에는 아무나하고 친구 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으나, 막무가내로 스팸메일 날릴 수도 없는 일(;;)
바쁜 회사 생활 탓에 MSN으로 항상 안부를 묻던 친구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빼곤 무시해왔던 수년간이었지만, 다짜고짜 일본 친구들에게 "야, 너 mixi 하냐, 친구 하자"라는 뻐꾸기 멘트를 팍팍 날려 그날 5명의 친구를 마이 믹시에 넣었답니다.
목표 달성의 기쁨을 만끽하며 예의상 글을 하나 쓰고 5명의 친구들의 페이지를 차례차례 방문. 사용하다 보니 꽤 재미가 붙더라고요. 생전 사용해보지도 않던 mixi를 길들이기 위해 종횡무진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그리고 3개월 후, mixi 일기장에 제 글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모르는 사람에게 친구 요청도 들어오고, 또 재밌는 점이 mixi는 자신의 페이지에 접속한 사람의 발자취가 남는답니다. 이 발자취를 따라 모르는 사람의 페이지에를 둘러보는 게 거의 일상처럼 되어버렸죠.
그리고 어느 날,
Love my life란 일본 퀴어영화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비극적이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퀴어 영화.
주인공 이마주쿠 아사미란 배우가 궁금하여 척척박사 네이버(-_-?)에서 검색을 하였지만, 패션잡지 모델이란 것 이외에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여느 때와 같이 mixi에 접속하여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주쿠의 팬클럽을 시작하여 Love my life의 팬 사이트까지 몇 갠 가 검색이 되더군요.
여러 사람의 감상평을 읽고 글쓴이의 페이지도 한 번씩 가보고, 이마주쿠의 정보를 충분히 얻고 난 다음에야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 여러 사람의 페이지를 방문해서인지 발자취에 이 사람 저 사람 왔다간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심심한데 발자취나 따라가 볼까~
그렇게 몇 명을 보다 눈에 띄는 사람의 페이지 발견.
프로필
이 름 : aa
성 별 : 여자
혈액형 : B형
취 미 : 영화감상, 여행, 펫, 인터넷, 텔레비전, 사진 등...
소개
22살입니다.
마이 페이스.
가족 모두 B형.
아빠, 동생 정말 싫어요.
녹차 종류 음식과 단것을 좋아해요.
강아지 너무 좋아해요.
.
.
생략
.
.
아무래도 전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남성분들의 친구 요청이나 메일은 사절.
궁금증을 유발하는 마지막 문구.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일기를 클릭하니 싸이에서 말하는 일촌공개(-_-;;)
젠장~ 궁금해!!!!!!
그래서,
"안녕, 난 한국에 살고 있는 cielo라고 해. 우연하게 너의 페이지를 보게 되었는데 프로필을 보니 성격이 잘 맞을 거 같아서 메일 보냈어. 혹시 괜찮으면 친구 할래? 답장 기다릴게(^^)/ "
...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기록 : 이 글은 2009년 2월 3일 23시 45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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