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이 떠졌어요. 옆을 보니 그녀가 눈을 뜨고 있어 깜짝( ̄□ ̄;
혹시 한숨도 안 잔 거야?
아니에요. 잤어요.
얼굴을 보니 거의 한숨도 안 잔 모양. 결혼을 안 해서 잘은 모르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살 맞대고 자면 금방 풀린다고 하잖아요. 역시 하루가 지나니 어제 화가 났던 부분도 어느 정도 사그라지더군요. 하지만, 제 마음속 한구석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아 더 이상은 무리'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 상태이기도 했죠.
그녀는 시간을 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콜록콜록...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짧게 통화를 하고 끊더라고요. 휴가를 못 냈던 것인지 저를 만나려고 무리해서 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하는 저를 붙잡더니 비장한 눈빛으로 “같이 목욕해요”라고 말하는 그녀.
어떻게 된 거야? 어제는 별로라더니…
뭐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못 할 일은 없을 거 같아서요.
근데 시간이 없을 거 같은데, 체크아웃 시간도 거의 다 됐고...
그래요... 그럼 먼저 들어가세요.
그녀가 유감스러운 듯 말했어요.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촉박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무엇보다 제가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에 거절을 해버렸죠. 준비를 마치고 호텔을 나서기 전 서로 꼭 부둥켜안고 한동한 멍하니 있었어요. 왠지 모르게 이게 우리의 '마지막 포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탑승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마지막 날이어서 별달리 일정을 짜지 않았던 터라 택시에 몸을 싣고 곧바로 공항으로 출발했죠. 택시 안에서 손을 꼭 붙잡는 그녀. 저는 손을 살짝 빼고 그녀의 시선을 피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반쯤. 공항은 매우 한산했어요. 그녀는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헤어짐이 다가왔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눈물이 글썽이더라고요. 코인로커에 짐을 넣고 구석이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는데, 갑자기 피곤하다며 잠깐 눈이 붙이겠다는 그녀. 그녀는 쓰고 있던 니트 모자를 턱 아래까지 길게 늘어트리고 머리를 벽에 기대어 완전 수면 태세에 돌입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턱밑으로 흐르는 한줄기 눈물. 그녀는 니트 모자 속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올려보니 그녀의 눈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계속 눈물이 나요.
참지 말고 울고 싶은 만큼 울어.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한바탕 울더니 어색한 웃음을 씩~ 지어 보이며 다 울었다는 그녀. 어느 정도 진정된 거 같아 점심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 공항으로 갔어요. 한산한 국제선과 다르게 사람도 바글바글 선물과 토산품 가게도 즐비해 있더군요. 과자와 명란젓 등 선물을 간단히 산 후에 다시 국제선 공항으로 돌아와 레스토랑에서 술을 한잔 시켜놓고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기다리는 게 얼마나 지루하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시내라도 돌아다니다 오는 거였는데" 후회를 하며 앉아 있었는데 4시 출발 예정이던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의 출발시간이 5시로 변경되었다는 방송이 흘러나오는 것이었어요.
빨리 가고 싶죠?
왜?
시간만 계속 보고, 빨리 가고 싶어 하는 눈치인 거 같아서요.
아니야.
사실 이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계속 사귀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정말 머릿속이 복잡했거든요. 어쨌든 한국에 빨리 돌아가 이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죠.
둘 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계속해나갔어요.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 딴생각만 하게 되는 나. 어느덧 시간이 흘려 그녀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어요. 레스토랑을 나와 수속을 마치고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죠.
즐거웠어. 몸 조심히 건강하게 잘 있어.
또다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그녀.
울지 마. 네가 울면 내가 마음 편히 못 가...
알았어요.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죠?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차마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럼. 도착하면 연락할게.
꼭 연락해요. 연락 안 하거나 하지 말아요.
기다릴게요.
그녀에게 웃음으로 안녕하고 못내 아쉬워 몇 번을 돌아보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꾹 박은 뒤
"아~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며칠 동안 어둠의 도시에 있었던 거 같아~"
이렇게 생각하며 탑승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와사비라도 삼킨 것 같이 코끝이 찡하더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어요.
"왜 이러지... 눈물이 멈춰지질 않아"
옆에 가던 한 중년의 일본 여성이 "애인이라도 두고 가나 슬피 우네"라는 멘트를 날려주시니 더욱더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모른 척해주지..."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건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며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 순식간에 현실세계로 빨려 들어왔어요. 핸드폰을 켜니 그동안 쌓여 있던 문자 메시지가 한가득 도착하더군요. 그중에 오늘 날짜로 mixi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 메일이 도착해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모를 허탈감과 허전함을 느꼈어요. 서둘러 컴퓨터를 기동시켜 mixi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녀에게 온 메시지더군요. 눈물이 펑펑 났어요.
지금 당신이 탄 비행기가 저 멀리 떠나고 있어요. 눈물이 앞을 가려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되돌릴 수만 있다면 처음 만난 그 시간으로 되돌려 다시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당신에게 모든 걸 맡겨서 미안해요. 피곤해 했는데 많이 걷게 해서 미안해요. 술도 같이 마셔주지 못하고 즐겁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떠나고 난 후에야 이렇게 후회하고 있어요. cielo 보고싶어요.
기록 : 이 글은 2009년 3월 4일 18시 19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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