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서울여행까지 앞으로 약 2달. 한국에 와본 적이 없는 그녀는 단지 제가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 외에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가이드북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그녀의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답니다.
우와~ 자갈치 시장 가요. 호텔에서 가까워요? 이거 맛있겠다~
거긴 부산입니데이~Σ( ̄□||||
원거리 연애는 다음 만날 약속이 정해지면 만나서 뭘 할까, 어디를 갈까 계획을 짜느라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거 같아요. 계획대로 움직인다기보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지루함도 달래고 만나기 전에 기대와 기쁨을 한층 높여주는 촉진제 역할이랄까요.
미친 듯이 시간이 흘러 2월 8일 그녀가 한국에 오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닷새 동안 생활할 옷가지를 챙겨 차 트렁크에 실어 놓고, 연평균 18℃의 나름 남국(?)에 사는 그녀가 서울의 칼바람에 견딜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어 그녀에게 입힐 코트도 몇 벌 챙겨 넣었죠. 만발의 준비가 끝난 상태. 설레는 가슴 안고 공항으로 고고~!
미리 가서 기다릴 작정이었는데 길이 막혀 빠듯하게 공항에 도착했어요. 서둘러 도착 층에 가니 마침 착륙했다는 표시가 깜박이더라고요. 그녀가 한국에 와있다고 생각하니 후쿠오카에서 느꼈던 그 두근거림이 다시 한번 엄습해와서 다리가 살짝 풀리는 느낌.
정면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도착장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그녀가 보였습니다. 아직도 바가지 머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예전에 사진에서 봤던 귀여운 모습으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고 있길래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지요. 그녀는 저를 발견하곤 안심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걸어왔어요.
어서 와~ 멀리서 보고 딴 사람인 줄 알았어.
역시 바가지 머리가 뷁!이었나봐.
그래요? 쫌 그렇긴 했죠. 아니 많이 그랬죠.
머리스타일이 이렇게 중요할 줄이야...
아무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니까 엄청 귀여워!
저 보다도 바가지 머리가 더 쇼크였나 봐요? ㅎㅎ
전 그녀가 바가지 머리가 아닌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어요. 완전 사랑스러웠죠. 차로 돌아와 그녀의 생일(1월 말)에 사둔 반지를 꺼내 그녀의 손에 끼워주었습니다.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고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중간 먼 산에 아주 보일 둥 말 둥 덮여 있는 눈을 보며 (제가 보기엔 거의 서리에 비슷한...) 너무 기뻐하는 그녀. 역시 남국 사람인가 봅니다  ̄∀ ̄*)게다가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는 차들을 보더니,
지금 몇 킬로로 달리는 거예요?
110킬로
그럼 저기 앞질러 가는 차들은 대체...
F1에 안 나가서 그렇지 나가면 우승할 사람 많을걸-_-;;
빨리 적응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야.
캬악... 무서워!!!
깜빡이도 안 켜고 차선 변경에 추월에 있을 수 없는 일이야!!!( ≧□≦)ノ
그녀는 거친 운전과 도로가 넓다는 것, 그리고 경차가 거의 없다는 것에 놀라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한국에 왔다는 걸 실감하는 거 같았어요. 호텔에 도착하니 그녀가 보고 싶어 꾹꾹 참았던 마음이 한꺼번에 폭발해버릴 거 같았습니다. 그녀의 달콤한 키스세례에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더라고요. 이대로 그냥 그녀 품에 안겨 자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벌써 저녁 시간.
배고프지? 저녁 먹으러 나가자.
그래요. 뭐 먹으러 갈 거예요?
음, 역시 한국에 왔으니 고기! 어때?
좋아요!!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불고기 브라더스로 향했어요. 밖에 나오니 춥다고 발발 떠는 그녀. 가로등 빛 아래서나 확인할 수 있는 작은 눈발이 흩날리니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눈이다~눈"이라며 들떠 있더군요. 역시 남국 사람 맞나 봅니다ーヾ(  ̄▽)ゞ
그녀는 약속(?)한 대로 술을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냥 소주는 너무 강할 거 같아서 레몬소주를 시켜줬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는지도 몰라요. 굳은 결심을 하고 마신 소주는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과학시간 같다고 하더군요.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는 그녀. 그래도 꾸역꾸역 마시더군요. 정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 ̄; 육회도 먹고 싶다고 하여 주문했는데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아깝지만 거의 남겼어요.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밥이 맛있습니다. 윤기가 좌르르 찰기도 적당히! 그리고 데이트할 때 옷에 냄새 배면 정말 싫은데, 연기가 나지 않도록 강력한 배기구를 설치하여 냄새도 연기도 없이 쾌적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위기도 깔끔하고요. 하지만, 맛은 그냥 보통이라는 거(...)
배불리 먹고 나와 친한 언니(아하 '언니B')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언니B는 그녀와 저와의 관계를 알고 있어요. 그녀를 인터넷으로 처음 알고 좋아하게 됐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몇 번 상담을 했었거든요.
강남에 레인보우에서 언니B를 만났습니다. (홍대 나비와 비슷한 분위기 같은 시스템) 그녀와 언니B는 첫대면인데도 몇 번이나 만난 사이처럼 금방 친해지더군요. 알고 있는 일본어로 인사도 하고 자기소개도 하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일본어 고갈상태(...)에 이른 언니B.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됐죠. 언니B가 그녀에게 간단한 한국어를 가르쳐줬는데, 어설픈 발음으로 열심히 따라 하는 그녀가 무척 귀여웠습니다.
그녀와 언니B는 담배를 안 피우는데, 스트레스 해소 겸 물담배를 피워보라고 꼬셨어요. 저는 원래 애연가라 물담배 같은 건 연하다는 생각뿐이지만 그녀와 언니B는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켈룩켈룩켈룩~ 꽤 독했나 봅니다. 술에 물담배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게 보이더군요.
배가 고프다는 언니B. 밖에서 따뜻한 우동이라도 먹고 돌아갈까 했는데, 설 연휴 마지막 날인 데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영업을 하는 곳이 몇 군데 없더라고요. 할 수 없이 이자카야에 들어가 오코노미야키와 탕 종류를 시켜 배를 채운 뒤 언니B와 헤어졌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한산한 서울 거리를 그녀와 함께 손을 붙잡고 걸으니 기분이 좋더군요.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니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콸콸 채우더니 다시 후다닥 뛰어나와 던진 한마디...(다들 예상하시겠지만)
"같이 목욕해요~♥"
이걸로 3번째다~ 이번에야말로 같이 입욕하는 건가 ㅎㅎ ヽ(´∀`。ヽ)
기록 : 이 글은 2009년 3월 13일 15시 38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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