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녀.
캐주얼한 옷차림에 니트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지만 느낌으로 금방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녀도 저를 한 번에 알아본 듯 수줍은듯한 얼굴로 다가왔죠. 왠지 쑥스러워 눈도 못 마주치겠고...'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의 손들 덥석 잡고 종종걸음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는 어둠 속에 뻘쭘한 미소만 교환한 채( ㆀ^-^) (' - ';; )
호텔에 도착한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짐을 구석에 놓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조용히 저를 바라보더라구요. 오전에는 일, 오후에는 장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어요. 저도 오전부터 한잔 걸친 데다 가깝다고 해도 외국에 와있는지라 상당히 지쳐 있었죠.
정적이 흐르는 방에 멀뚱이 앉아있는 그녀와 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난감해요. 방안이 더웠는지 모자를 쓰고 있던 그녀가 모자를 벗었는데...
'넌, 누구냐? Σ/( ̄□ ̄)/'
사진에서 봤던 그녀와는 전혀 딴판인 여자가 앉아있는 게 아닌가? 아까 하카타역에서 얼굴도 확인 안 하고 무작정 달렸는데 혹시나 다른 사람 손 붙잡고 왔나 싶기도 하고... 머리는 일명 바가지 머리 스타일에 아무튼 전혀 다른 사람 같이 보였어요. '망했다'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더군요(-_-a)
머리스타일을 바꾸기 좋아하는 그녀는 만나기 2주 전쯤 바가지 머리로 자랐는데 망쳤다는 거에요. "망쳐봤지 얼마나 다르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녀를 보니 정말 납득이 가더군요. 바가지 머리는 완전 귀엽던지 완전 이상하던지 둘 중에 하나지 않습니까? 눈도 크고 얼굴도 작은 그녀에게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깡말라서인지 잔혹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어요. 아니, 솔직히 무서웠어요(ㅠ_ㅠ)
그녀도 자신의 머리스타일이 너무너무 싫었는지 또 다른 스타일로 자르려고 했지만, 더 짧아질 것 같아서 그만둔 모양이에요. 그래서 밖에 외출할 땐 모자를 필히 작용했던 듯.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이 현실이 꿈이길 바랬죠.
그래도 루미코(미용사)씨는 자르고 나서 성공적이라고 완전 만족했었어요..(;;;)
이 말을 듣고 정말 폭소했다죠.
남들은 다 이상하다고 하는데, 혼자 만족하면 다냐? ( ̄□ ̄;
게다가 집에 가니 가족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피식' 웃었어요.
동생은 이 머리를 보고 자매인 게 부끄러울 정도라고 했어요.
...ㅋㅋㅋ
더 이상 아무 말 도 할 수 없었죠. 그냥 몇 개월 기다리는 수밖에...
배고프지? 뭐라도 먹으러 나갈까?
뭐 먹고 싶은데요?
음... 아무튼 한잔하고 싶어~
그래서 호텔 프런트에서 이 주변에 분위기 괜찮은 술집이 있냐고 물으니 호텔 주변 술집만 표시된 허접한 손 지도를 한 장 꺼내더니 어여쁜 언니가 괜찮다는 술집을 설명해주었어요. 호텔을 나가 왼쪽으로 직진. 쭉 걷다가 2번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면 있는데 5분도 안 걸리니 금방 도착할 것이라 하여 그대로 호텔을 나왔죠.
왼쪽으로 가다 왼쪽으로 꺾으라는 거네.
응. 근데, 지도에는 오른쪽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왼쪽이라고 말했으니까 가보자.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이것은 헤맴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앞으로 나아갈수록 어두컴컴해지는 거리
.
.
인적이 뜸해지고
.
.
사거리 같은 건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
.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분 정도 걷고 있던 그녀와 나.(ノ_・。)
5분 정도면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나?
역시 오른쪽이었나 봐요.
이 여자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거짓부렁을 하다니...( ≧□≦)/
이렇게 농담을 하면서 호텔 방면으로 돌아갔어요. 돌아갔다고 해야 하나?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 게 아니고 가깝다고 생각되는 길을 골라 갔는데, 뭐랄까... 호텔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듯한 느낌? 호텔 꼭대기 간판은 보이는데 당최 가까워지질 않네? 헤맴의 연속 ̄∀ ̄*)
호텔에 돌아가니 교대시간이었는지 어여쁜 언니는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남자가 한 명 있더라고요. 그 남자분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니 역시 오른쪽이었어요( ̄O ̄) 정말 호텔 바로 옆이더군요.
술집에 들어가니 부부 같지 않은 중년커플(아마도 불륜)이 정답게(?) 얘기하는 거 빼곤 아주 조용한 분위기였어요. 안주를 몇 가지 시키고 마시기 시작했죠. 그녀가 목이 탔는지 카시스 오렌지를 벌컥벌컥 마시고, 저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본격적으로 熱燗(데운 정종)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맥주도 소주도 못 마시는 그녀는 저만 바라보고 있을 뿐, 같이 마시자 꼬셔봐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마시세요"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죠. 몇 번 청하면 보통 마지못해서라도 한잔이라도 마시는 데 전혀 반응하지 않는 그녀가 참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어요.
2병 3병 마시니 기분이 좋아져 들떠 있던 저와는 달리 그녀는 졸린 건지 재미없는 건지 말도 별로 안 하고 하품만 하고 있었죠. 그녀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니 저까지 텐션이 다운되고 말았답니다.
벌써 12시가 넘었네. 피곤한데 호텔로 돌아가자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봤어요. 피곤함과 긴장감이 섞여 있는 그녀의 표정.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고 "정말 보고 싶었어"라고 귓가에 속삭이니 그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 그리고 첫 키스.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그녀의 상의를 벗기고 그녀도 저의 상의를 벗기려고 했지만,
.
.
바스락바스락
.
.
응? 뭐지?
.
.
저기... 단추가 안 풀려요~ Σ( ̄□||||
한순간에 긴장감이 풀리면서 웃고 말았죠. 참 복잡한 옷이었거든요(≧▽≦;
시범으로 단추를 하나 풀면서 (왠지 에로틱하네요;;)
이건 이렇게 푸는 거야...(^_^;)
...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니 그녀의 머리 위에 노란 전구가 '번뜩'이며 수줍은 웃음을...
그리곤 침대에 누웠죠.
오늘 너무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왔어요.
cielo, 진짜 너무 좋아해요~
떨리는 목소리와 수줍은 얼굴이 너무 예쁘게 보였어요. 그녀를 안았을 때의 온기, 너무 행복해서 마치 꿈만 같았죠. 그 후로 취기가 돌아서 유감스럽게도 별로 생각이 안 난다는...(정말?)
그렇게, 행복한 밤을 보내고 꿈속으로...
기록 : 이 글은 2009년 2월 23일 19시 13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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