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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o/[동성커플] 그녀 이야기

우리 회사 사람은 나에게 동성 애인이 있는 것을 과연 알까?

by cielosereno 2020. 7. 30.

결론부터 말하면,

"여러 정황으로 봐서 지금 사장님은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다"입니다.

 

 

때는 7년 전, 일본에 와서 처음 입사한 회사의 면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거리 연애를 끝내고 그녀와 함께 지내기 위해 한창 일본에 있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던 시기였는데, 이미 3군데는 내정을 받은 상태였고, 이력서를 넣은 곳 중에 마지막 회사의 면접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1, 2차 면접 통과 후 3차 임원 면접 때, 제 경력이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당시 사장님께서는 왜인지 모르지만 제 호구조사에 열을 올리셨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왠지 신이 난 듯 애인은 있냐고 물으셨고, 저는 있다고 답을 했죠. 그러자 애인을 두고 일본에 오려는 것이냐며 심하게 걱정하시길래, 일본인이라고 하니 알겠다는 듯 금방 납득하셨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저에 대한 호구조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그럼 결혼은 생각하고 있냐고 물으시길래, 약간의 빡침에 "저는 언제나 연인처럼 살고 싶어서 결혼은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요? 아이도 원하지 않고요"라고 하니, 사장님께서는 본인도 딸이 둘 있지만, 결혼도 안 하고 그렇게 산다고 하면 미쳐버릴 것 같다며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럼 혹시 입사해서 일본에 오게 되면 그 남자 친구와 같이 사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아차! 싶었습니다.(ノ_・。) 저는 그녀와 함께 살 건데 나중에 앞뒤가 안 맞으면 상당히 꼬일 것 같아서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지금은 남자 사람 친구인 이야기로 급 대체했습니다...ㆀ 스페인에 유학가 있고 공부 때문에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요. 이건 사실입니다. 그는 정말 스페인에 유학 가 있었거든요.

 

 

그 후로도 가족사부터 전 직장 이야기까지 제 기억 속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셨고, 사장님께서는 왠지 마음에 든다며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기나긴 면접이 끝났습니다.

 

 

아무리 면접이라도 이 생판 모르는 아저씨와 내가 왜 애인이랑 몇 년을 사귀었는지까지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 저는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_-a)

 

 

이유는, 앞서 내정받은 3개의 회사는 도쿄에 있는 시스템 엔지니어 쪽이었고, 마지막에 면접 본 회사만 업종과 지역이 달랐습니다. 원전사고가 있어서 웬만하면 도쿄 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이 회사를 선택하게 되었죠.

 

 

보통 회사에 새로 사람이 들어오면 호구 조사를 많이 하잖아요?

사장님을 포함한 부서 사람들하고 첫날 밥을 먹었는데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중에 항상 묻는 말,

"남자 친구 있어요?"가 어김없이 나왔습니다.

 

 

사장님은,

"cielo 씨는 남자 친구와 〇년을 사귀었는데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고, 게다가 스페인 유학 중 이래"라고 소문을 내주셨습니다.

아아아아!!! 정말 면접 때 한 이야기를 잊지도 않았나 봐요, 기억력도 대단하시지...

 

게다가 또 자기 딸이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란 말까지 곁들여서 말이죠.( ╬。_。)

 

 

분위기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습니다.

인상이 좋고 허허허 털털하게 웃으시면서 항상 물개 박수를 치는 그런 사장님이었거든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성적 지향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편견은 바로 겉모습이죠.

머리가 짧거나, 보이쉬하게 옷을 입거나, 화장을 안 하거나, 행동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범위를 벗어나거나, 이런 것들로 판단하곤 하죠.

 

 

하지만, 전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회사는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회사였어요.( ̄^ ̄;)

입사해서 반년 정도는 아무리 철야를 하고 크런치 모드에 들어가도 예쁘게 차려입고 가기도 했지요.

 

 

그런데, 정말 못해먹겠더군요.

20시간 이상 화장한 채로 회사에 있을 때도 부지기수였고, 날이 갈수록 피부가 썩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과감히 화장도 안 하고 옷도 아주아주 캐주얼하게 입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가끔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할 정도로.  ̄∀ ̄*)

 

특히 일본은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너 위반!이라고 생각하는 골수 꼰대들이 꽤 많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의 입사 초기 모습을 모르는 신입들은 가끔 출장, 외부 미팅, 개인적으로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말고는 너무 편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혹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첫인상은 정말 중요한가 봅니다.

 

 

입사 초기에 있던 멤버들은,

"cielo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화장, 원피스, 힐까지 신고 다녔는데, 우리 회사가 이렇게 만든 거야!"라는 둥, 그 짧았던 입사 초기 6개월간의 모습이 뇌리에 박혔는지 항상 대변을 해주었지요.

 

 

 

 

 

 

그렇게 3년을 지내다 이직을 했습니다.

이직이라기보다는 제 직속 상사였던 당시 본부장님이 회사를 따로 차려서 나왔거든요. 자연히 제 밑에 있던 직원들과 관련 부서 몇몇... 한마디로 다 아는 사람들이 그대로 새로운 회사의 초창기 멤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영입한 신입들이 들어오게 되었죠.

환영회나 술자리 등을 통해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갈 때면 익히 전 직장에서 제 얘기를 많이 듣던 동료들이 제 얘기를 어김없이 대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얘네들 대체 뭔지...┓( ̄∇ ̄;)┏)

 

 

처음 잘못 꿰어진 단추로 인해 제 기억에서 이미 사라진 그는, 회사가 바뀌어도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어 회사 사람들 머릿속에서 온전히 나이를 먹으며 그렇게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기에 그냥 그렇게 가볍게 넘기며 지내왔었죠.

 

 

그런데 지금 사장님(전 회사 본부장)이 남자 친구가 스페인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주 의심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네...╬ ゚ Д ゚ ) )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은 사장님의 단순한 호기심과, 그리고 그녀와 저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술 마시면 차로 데리러 오고, 자전거로 데리러 오고, 도시락도 싸주고, 이사 갈 때도 같이 이사하고, 사장님 눈에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으로 긴가민가한 점이 많았겠죠.

 

 

"어제 cielo가 술 취했다고 전화하니 쌩~하고 달려오는 게 웬만한 남친보다 sereno가 낫다니까!"

"계속 같이 이사 다닐 거야?"

"그래도 남인데 계속 같이 생활하면 안 불편해?"

"sereno는 남자 친구 없대?"

"남친은 언제 돌아와...?"

 

 

 

사장님은 눈치를 챈 것 같죠?

 

 

 

"결혼 안 해?"

 

"저 결혼 안 할 건데요?"

 

"하긴... 네가 결혼해서 일 그만둔다고 해도 걱정이다. sereno 잘 있지?"

 

"결혼하면 일 그만 두나요?"

 

 

뭐, 이런 식의 대화들.

 

 

 

게다가 사장님은 sereno와 거의 친구처럼 지냅니다.

밥 먹을 때도 부르라고 하시고, 둘이서는 반말로 얘기하기도 하고, 꼬박꼬박 연하장도 보내고,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도 챙겨주는 뭐, 그런 사이.

 

전혀 모르는 사이라면 기회를 봐서 얘기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서로 알고 지낸 나날이 길어지다 보니 쉽사리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사장님은 사생활을 파고드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제가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때는,

 

"넌 너무 정이 없어!"

"넌 철저한 서양 개인주의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네 얘기도 좀 해봐"

 

... 등등, 서로 무언가를 꼭 공유해야 하는 것처럼 너무 많은 잔소리를 들으며 지내왔습니다.

 

 

 

 

 

 

몇 년 전 지방으로 출장을 갔었을 때,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고 엄마한테 전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전화를 바꿔달라는 식으로 계속 옆에서 손짓을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왜 이러나 싶었는데, 그 행동을 계속 보고 있으니 마치 마수에 걸린 것처럼 핸드폰을 건네주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죠.ㄷㄷㄷ

 

 

"어머님, 저 〇〇입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출장 왔는데,

지방으로 와서 cielo가 집에도 못 들리고 갈 것 같아 죄송하네요."

 

"어머님, 걱정하지 마시고요,

cielo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아, 네, 네~

건강하세요.

다음에 뵐게요."

 

 

순간 내 남편인 줄...(-ㅂ-)

 

 

그렇게 사장님과 전화를 마친 후에 엄마와 이어서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말하길,

 

 

"왜 그러는 거니?

무슨 일 있니?

순간 너무 놀랬어..."

 

...라고.

대체 누굴 뵌다는 건지...ㆀ

 

 

이렇게 오지랖인 사람이기에 질문의 깊이도 다른데, 면역도 생기고 같이 오래 일해서 그런지 터울 있는 오빠 같고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이 많이 줄긴 했는데, 혼자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인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 회사 사업 확장하면 sereno도 입사시켜서 도쿄로 이전할까?"

"sereno를 왜 입사시켜요? 더~ 좋은 회사 다니는데요?"

"cielo의 껌딱지니까 도쿄로 가면 sereno도 데리고 가는 거 아니야?"

"저 도쿄 안 갈 건데요?"

"......"

 

 

 

아무튼, 사장님은 의심 모드, 그 외 사람들은 모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반대로 다 아는데 나만 모르거나. (-ㅂ-;)ㅋ

 

 

면접 때 그 한마디가 이렇게 대대손손 전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이 상황을 언제 바로 잡을 수 있을지, 또는 그럴 필요가 있을지,

피곤함을 느끼는 요즘...

 

 

이런 얘기를 그녀에게 하면,

서운해하지도 않고 폭소합니다.

 

 

 

"아직도 유학 중이에요? ̄∀ ̄*)

그랑 헤어질 타이밍도 슬슬 정해야겠네...ㅋ"

 

 

 

내가 죄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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