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희 커플이 일본에서 파트너십 선서를 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혹시나 한일 동성 커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선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성끼리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일부 지자체에서 독자적으로 성적 소수자의 파트너를 인정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살고 있는 오사카를 기준으로 설명드릴 텐데, 다른 지역도 특별히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파트너십 선서 이유
2018년 12월 어느 날, 그녀와 저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크게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계단에서 떨어져 오른쪽 발목 위쪽에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고, 저도 같은 시기, 같은 부위에 저온 화상을 입어 몇 달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어떻게 같은 부위에 똑같이 상처를 입냐며, "이것도 운명이다, 우린 천생연분이다"라며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철없이 웃으며 통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뜩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그 사건이 상당히 무서운 일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상처를 입을 그날 저녁에 응급실에서 다리를 꿰맸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랐을 거라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혹시 잘못돼서 반신불수가 됐거나,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거나, 또는 혼수상태에 빠졌다면 난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녀와 저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최소한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먼 훗날 이 세상을 누군가 먼저 떠났을 때 '남겨진 사람의 생활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고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니 2018년 6월부터 오사카에서도 동성 파트너십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최소한의 관계 증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파트너십 대상자 요건
■파트너십 선서를 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요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1. 양 당사자가 성인이어야 할 것
2. 당사자 중 최소 한 명이 오사카 시내에 거주하거나 또는 오사카 시내로 전입할 예정일 것
3. 양 당사자 모두가 미혼 상태이어야 하며, 파트너를 맺을 상대방 이외의 파트너십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
4. 당사자들이 민법 734조 (근친자간 혼인 금지) 및 735조(직계혼족간 혼인 금지) 규정에 따라 혼인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닐 것
근친 관계가 아닌 이상 특별한 요건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얼마전에 오사카후도 파트너십 제도가 도입되었으니 오사카시가 아니어도 가능해졌답니다.
준비 과정
그녀와 저의 경우 국제 커플이기에 상기 요건 + 외국 국적의 파트너와 해당 선언을 할 수 있는가? 가 문제였는데, 이를 알아보기 위해 그녀가 해당부서 담당자에게 문의를 하였고, 결론은 '가능하다'였습니다.
인권 존중에 일환으로 이 선서 증명 제도를 실시하면서, 외국 국적 파트너가 해당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차별을 낳기 때문에 당연히 가능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히.
■준비 서류
일본 국적
1. 독신 증명서
2. 주민표 사본 또는 주민표 기재사항 증명서
외국 국적(한국)
1. 본국에서 발급한 독신 증명서, 또는 가족관계 증명서 등 미혼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공적 서류
2. 1번 서류를 일본어로 번역한 서류
3. 주민표 사본 또는 주민표 기재사항 증명서
본인 확인 서류
1. 개인번호 카드
2. 여권
3. 운전면허증
4. 그 외 관공서에서 발급한 면허증 및 등록증 등, 본인 얼굴이 첨부된 것
일본 국적과 외국 국적의 다른 점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서류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일본어 번역본을 첨부해라'
그리고 외국 국적의 파트너가 일본 이외에 거주하고 있으면 신청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제출 서류에 주민표가 명시되어 있으니, 일본 국내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자동으로 붙겠지요.
저는 2019년도 여름에 한국에 가서 미혼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로 '혼인관계 증명서'를 발급해왔습니다.
번역은 누가 해도 상관없어서 제가 했고, 공란에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번역한 사람과 번역한 날짜를 넣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담당자와 파트너십 선서 예약 시간을 잡아야 하는데,
오사카의 경우, 평일 9:30, 11:00, 13:30, 15:00에 예약을 할 수 있고, 저희는 2019년 10월 4일 9:30으로 잡았습니다.
■위치
大阪市西区立売堀4丁目10番18号 阿波座センタービル1階
(Osaka Metro 中央線・千日前線「阿波座」駅 2号出口または4号出口よりすぐ)
파트너십 선서 당일
그녀와 저는 특별한 날이기에 나름 예쁘게 꾸미고,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서 산책 겸 그녀의 손을 잡고 해당 장소에 선서를 하러 갔습니다.
도착 후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개별실로 이동해서 파트너십 선서에 대한 설명, 서류 작성, 서류 확인을 하였습니다. 담당자분은 긴장을 하셨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해주셨고, 카드나 증명서의 이름을 누가 위에 기재할 건지도 세세히 확인하면서 무사히 아래와 같은 카드를 발급받았습니다.
카드 디자인을 고를 수 있는데, 솔직히 다 촌스러워서 가장 무난한 것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뀐 것은?
이렇게 그녀와 저는 일본에서 우리들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최선을 했습니다.
파트너십 선언을 한들 법적 효력이 생기거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것들 중,
가령, 파트너가 병들었을 때 면회를 위해 "난 이 사람이랑 관계있는 사람이야!"라고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부 파트너십 제도를 인정하는 보험회사를 통해 서로에게 보험을 들 수 있다는 것, 가족 수당이나 복리 후생과 같은 기업 차원의 제도를 지금보다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시영 주택 등에 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등,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민간 차원에서 가족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은 늘었고,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게 되는 첫걸음이 파트너십 선서라면, 선서를 한 이들이 많아질수록 일본 사회는 조금씩 변화해가겠지요.
그녀와 나의 이야기
자기, 파트너십 맺으니까 기분이 어때?
난 오늘보다 한국에서 혼인관계 증명서 발급할 기분이 묘했는데.
왜요?
미혼 인생 끝났다는 생각이 스쳐서...ㅋ
╬ ゚ Д ゚ )
털썩...
그래서 자기는 어떤 기분이었는데?
우리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형태로 남아서 좋다고 할까?
팩트 설명 고마워...ㆀ
다른 건 없어?
음....
음...?
너 혹시...
웅...
테헷...(* ´∀ ` *)
( ╬。_。)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냐!?
우리는 그냥 서로의 곁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한 거야.
이런 제도가 있던 말던
.
.
.
.
.
.
.
.
.
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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