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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elo/[동성커플] 그녀 이야기

일본에서 3주기 제사 지내기 체험

by cielosereno 2020. 6. 17.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5월은 왠지 이런저런 일이 겹쳐 너무 바쁘네요.
우선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골든위크였는데, 그녀의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날이 딱 골든위크가 시작되는 날이어서 그녀의 아버님의 본가에 어찌어찌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전 그녀의 친할머니를 딱 한 번밖에 뵌 적이 없습니다.
2년 전 이맘때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미야자키에 놀러 왔었습니다. 그녀는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님께서  본가에 가보자는 말에 선뜻 따라나섰더랬죠.

본가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그녀의 할머니께서 장바구니를 들고나갈 채비를 하고 계시더군요.
아버님께선 한국에서 온 cielo짱이라며 소개를 시켜주셨고, 짧게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할머니께서 가신다는 마트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에 왔습니다.

그다음 날이 몇 년 만에 아버님 4형제와 할머니 동생, 그리고 그 가족들이 함께 모여 쿠마모토로 가족 여행을 가는 날이어서 아침 일찍 그녀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대절한 버스 승강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그녀와 저는 오래간만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마음껏 놀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한참 먹고 있던 중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에 그녀가 포크를 툭... 하고 떨어뜨리길래 불길한 조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전화야? 왜 그래?


........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

아침까지 정정하셨는데 어쩌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제 뵌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이야...
게다가 그녀도 몇 달 동안 뵙지 못했다는데, 제가 대신 만나게 된 걸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장례식 준비로 그녀는 검은 정장과 구두, 염주 등을 정신없이 사러 다녔습니다. 전 그다음 날이 출국날이라 저녁에 본가에 창백하고 단정하게 화장을 한 할머니 영전에 향을 피우고 온 게 다였습니다. 장례식은 참석 못했었죠.

 


그리고 며칠 전 3주기가 되는 기일 전날.
(1, 3, 7, 13년...? 그리고 마지막이 33주기 순으로 기일 때 다 모인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론...;)

 

 


 
10시에 절에 가니 친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군요.
전날 아버님의 4형제와 부인들과는 석화&맥주 파티가 본가에서 있었는데, 많이 친해져서인지 가족같이 살갑게 대해주시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절 안으로 들어가 한 명씩 향을 피우고, 정좌를 하고 스님의 불경을 듣습니다. 그리고 묘에 가서 다시 향을 차례로 한 명씩 피우고 합장을 하고 스님의 불경을 또 듣습니다.

 


끝 ━━━( ゚д゚)━━━

 


절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그녀의 말로는 외할머니 기일에는(다른 절) 좋은 말도 해주고 불경도 길다고 하는데, 여긴 모든 것이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친족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벌써 끝난 거야?" 라며 모두 어리둥절한 모습...

 


아버님
이런 땡중!

돈만 많이 받아 처먹고 이렇게 빨리 끝나...!



그리고 스님과 함께 불단이 있는 본가로 가셔 다시 향을 피우고 불경을 외웁니다.
아버님이 한 말을 들은 걸까요?
본식보다 집에서 하는 게 2,3배는 더 길었던 거 같습니다.(;´・Д・)

 

그리고 초밥과 회, 등등이 차려진 점심을 다 같이 먹고 스님 퇴장~
음식까지 받아가더군요...(・∀・;)

 



시급 3만 엔에 음식까지 가져가고

으흠!! 마음에 안 들어!


할 말 다 하고 사셔야 하는 아버님...

스님 퇴장 이후 친족들끼리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나이가 지긋하진 한분이 아버님께 절 가리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
저 아가씬 뉘규?



친족들끼리만 모이는 곳에 쌩판 모르는 아가씨가 절에서부터 향 피우고, 거기다 집까지 와서 같이 앉아있으니 궁금하기도 하겠죠... 뭔가 싶었을 거예요.    

아버님께선 또 장난기가 발동하여,

 

 


제 숨겨둔 딸입니다.

 

 

...라고 농담을 하고 넘어갔는데,
1시간쯤 후에 또 한분이 손을 덜덜 떨며,

 

 

??????

많이 닮았어... 똑 닮았어!

 

... 라니,

 

 

ㅋㅋㅋ

그럴 리가요...((;゚Д゚))

 

 

아버님께서 농담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귀를 닫아버리신 얄미운 그대.

눈만 마주치면 뭔가 물어볼 태세...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그녀는 이것저것 하면서 가끔씩 제가 앉아있는 자리로 와 주었는데, 

 

 

 

자기, 저 할아버지께서

(생략)

이런 일이 있었어...

 

 

그래요?

냅둬요. 어차피 기억도 못해요 ヾ(´∀`*)

재밌잖아...ㅋㅋㅋ

 

 

그녀는 그렇게 휙 사라졌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 급 관심을 보이며 자기소개를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

어머 잘 부탁해요. 스즈키예요.
.
.
어머어머,

이쪽에 있는 사람은 다 스즈키구나... 꺄르륵
XX코예요, 호호

 


이런 식의 인사를 수차례 듣고, 넘쳐나는 음식에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놉니다.
보통 외국인으로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기나긴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녀가

 



역시 챠기랑 단둘이 있는 집이 젤 좋다.
친척들한테 질문공세 받고 신경 쓰느라고 피곤했죠?

 


아니, 다들 친절하고 너무 재밌었어.
이런 거 언제 경험해 보겠어(^_^)


나름 재밌죠?
모두 챠기를 성격 좋은 친구라고 했어요.


 

기분 좋은 말인데... 급 우울해졌습니다.

언제나 그녀의 '친구'로 소개되고 가족같이 지내도 '가족'이 될 수 없는 현실을,

그녀의 가족이나 친척들과 만날 때는 더욱 절실히 느껴지니까,

오늘은 정말 센티해...

 

 

 

기록 : 이 글은 2011년 5월 20일 14시 11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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