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첫날의 피로를 숙면을 취하며 풀었어야 하는데, 숙면은 커녕 과도한 움직임(?)으로 피로가 배가 된 느낌.
게다가 에어컨을 켜면 춥고, 에어컨을 끄면 푹푹 찌는 날씨에 불쾌지수 100%로 급상승하니 밤새 춥다 덥다를 반복하며 뜬눈으로 리모컨 붙잡고 조작하던 사랑스러운(...) 그녀는 정말 정말 피곤했을 겁니다.
자기~
내가 팁 하나 알려줄까?
무슨 팁이요?
온도 조절은 발로 하는 거야.
덥다고 이불을 들추지 말고 이불을 덮은 상태에서 덥다 싶으면 한쪽 발만 이불 밖으로 빼 봐.
그럼 슬슬 온도가 맞기 시작할 거야.
그러다 춥다 싶으면 발만 쏙 이불속으로 넣으면 아주 간단.
진작 알려주던가...(꿍얼꿍얼)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 방법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녀보다 3년 더 살았다고 가르쳐줄 게 있기도 하네요...ㅎㅎ
(고작 발 빼기...-┎)
암튼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고 하루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와 제가 묵고 있던 호텔은 도보 10분 거리에 2개의 역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있는 곳이었습니다. 호텔 프런트에서 지도를 받고 걸어가도 될만한 거리냐고 물어보니 그리 멀지 않다고 하길래 그녀와 저는 산책 겸 대만의 거리도 즐길 가벼운 생각으로 출발!!!
호텔을 빠져나와 얼마 지나지 않으니 큰 대로가 나오더군요. 오토바이 천국답게 쏟아져 나오는 스쿠터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신호를 아주 잘 지켜서 위험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름 스쿠터 패션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고요.
또, 대만의 신호등도 재밌습니다. 처음 파란불이 켜지면 신호등 안에 있는 사람이 느긋하게 천천히 걷다가, 7초 남기고는 미친 듯이 막 뜁니다.(^_^;;) 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마음이 급해져서 같이 뛰고 싶어 진달까ㅎㅎ 효과 만점이죠. 사진에는 움직이는 파란 신호등 사람이 잘 찍히지 않았네요.
여기까진 재밌었는데 슬슬 엄습해오는 더위에 그녀도 저도 점점 짜증 나기 시작했죠.
아니, 이 더운 날에 웬 산책..?
미친 거지, 미친 거야...
걸어서 금방이라더니 20분을 넘게 걸어도
역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지도도 근거리 지도를 줘야지
원거리 지도를 주면 어쩌자는 거야~
우린 왜 이런 것도 확인 안 하는 거야?(゜▽゜*)
등등등, 살 타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저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진 곳으로만 골라 다니려니 이것 또한 짜증! 거기다 또 길도 헤매지요... 껄껄-_-;;
투덜거리며 걷다가 편의점이 보이길래 음료수를 사고 그 앞 그늘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반바지에 웃통을 벗은 반라(半裸)의 60대 정체불명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우리 앞에 끼익~ 소리를 내며 서더니 아래위로 훑고는 가이드북과 지도를 가지고 있는 손에 초점을 맞추며 응시하길래,
가볍게 이 사람한테 길이나 물어볼까 하고,
"써얼~, 쭝샤오신셩(忠孝新生) 역이 어느 쪽이에요"라고 물으니, 자전거에서 내려서 자전거에 열쇠 채우시고 다가오시는...ㆀ
흠짓... 일부러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냥 자전거 타신 상태로 말해주셔도 되는데...(^_^;)
반라 아저씨는 당차게 오셨지만, 진을 다 빼시곤 결국 모른다고 유유히 길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암튼 중간에 지도 잃어버려서 짜증도 내고, 다리 아파서 툴툴거리긴 했지만, 쭝샤오신셩(忠孝新生) 역이 아닌, 그녀와 저는 쭝샤오푸싱(忠孝復興) 역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호텔 근처 역 2개 중 더 먼 역으로 온 듯해요.
하지만, 목적지가 바로 가는 갈색 선인 무쟈셴(木柵線)이 지나는 역이라 고생은 했어도 조금 위안은 되더군요...ㅎㅎ (단순-_-)
무쟈셴은 무인 MRT이고, 고가 위로 달리기 때문에 새로운 타이베이의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종점인 동물원 역까지 20분 정도 거린 거 같아요.
우리의 목적지는 동물원이 아니라 마오콩(猫空)이었기에 2번 출구로 쏙 빠져나갔습니다. 역을 나가 10분 정도 걸으면 곤돌라를 탈 수 있는 역이 나오는데, 중간중간 꽝꽝 얼린 생수와 음료를 파는 가판대가 많았지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짐이 될 것 같아서 패스~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내릴 줄 알았습니다(...)
보이십니까? 산 두어 개 정도 넘은...(-_-;;)
설마, 길면 얼마나 길겠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듯한데, 곤돌라인 주제에 역이 4군데나 됩니다. 즉, 동물원 역에서 마오콩 역까지 중간에 2번을 정차하여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고 한다는 거죠. (그녀와 저는 아무 정보 없이 곤돌라를 탄 거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점점 속도도 붙고 흔들리고, 무섭다고 생각하니 점점 현기증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게다가 가장 힘들었던 건, 이 곤돌라에는 에어컨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는 길에 그리도 많은 가판대에서 꽁꽁 얼린 생수를 팔고 있었던 걸까요? ㅠ_ㅠ
35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날씨라 작은 창문으로 바람 따윈 들어오지 않습니다. 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끈적하고 기분 나쁜 상태... 여름에는 꼭꼭꼭 시원한 물을 한병 사서 타시고, 휴대용 선풍기나 널찍한 부채를 필수로 가지고 타세요. 안 그러면 미칩니다. 그녀와 저처럼 (-ㅂ-;;
드디어 마오콩 역에 도착!
마오콩은 다원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관음차(觀音茶)와 바오중차(包種茶)가 유명한데, 그녀와 저는 차 마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또 대만 차가 워낙 유명하고 맛이 좋다 보니 (아리산 차, 동방미인차 등등) 여기까지 온 게 된 거죠. 저희가 갔을 때만 해도 현지인이 많이 가는 관광지이지 외국인이 가는 메이저 관광지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네요^^;)
타이베이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우뚝 솟은 것은 201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101 빌딩.
3층 테라스에서 먼산을 바라보며 차 마시는 것도 좋을 듯...
그녀와 저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한적한 산비탈을 조금 내려온 곳에 있는 다원을 선택했습니다.
우선 다원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녀와 나(-_-a)
주인인듯한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아주머니는 메뉴를 주며 차를 고르라고 사인을 하길래 뭐가 뭔지 몰라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눈을 깜빡이고 있으니,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이 차는 눈에 좋고" 목을 잡고 기침을 하고서는 "이 차는 목에 좋다"는 듯한 설명을 곁들여 주시더군요.
어쨌든 관음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밖에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합니다.
맨 구석 쪽으로 가려니 이미 진을 치고 있는 대만 아저씨들... 역시나 포커 치고 계시고, 포커팀 외에는 아무도 없어서 반대쪽에 파라솔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잠시 후, 아주머니께서 다기세트와 아까 산 찻잎을 가지고 오셔서 대만 차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한적하게 그녀와의 티타임....
....이 아니고!
오늘 더위 3종 세트를 다 클리어했네요.
불볕더위 산책, 에어컨 안 들어오는 곤돌라 타기, 그냥 있기도 힘든 밖에서 뜨거운 차 마시기.
이 커플은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 ̄∇ ̄;)┏
기록 : 이 글은 2009년 9월 2일 22시 9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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