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남대문을 보고 있자니 속만 상했어요.
우리가 갔을 땐 외관이 많이 손상된 상태가 아니었고, 소방차도 많이 와 있어서 금방 소화될 거라 생각하고 남대문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백만 년 만에 와보는 남대문시장. 하지만, 불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깜깜 그 자체더군요.
응-_-? (잘못 들어왔나? 아닌데, 여기가 맞는데...)
왜 그래요?
아니야,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포장마차와 서너 군데 김 가게 빼곤 전혀 하질 않더군요.
아! 맞다! 오늘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지.
원래 새벽 5시까지 하는데... 연휴라 거의 안 하나 봐.
에... 유감 (ㅠ_ㅠ)
어두운 골목을 지나가는데 포장마차 삐끼가 일본어로 "딱 두 분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라기에 그녀가 솔깃해서 재빨리 포장마차 안을 휙 보더라고요. 그리고 절 보더니 또 피식 웃으면서,
뭐야~ 완전 텅텅 비었잖아~~
딱 두 자리만 남았다기에 정말 그런 줄 알고 들어갈 뻔 했다. 하하하(≧▽≦;
훗, 일종의 낚시지( ̄ー ̄; 파닥파닥.
그녀는 삐끼 말이 재밌었는지 계속 곱씹고 되새기며 독백을 하더군요.
딱 두 자리만 남았대~ㅎㅎ
'딱'은 아니지 않아? 냐하하. 딱이라니.. 딱이래... 딱은 아니지.ーヾ(  ̄▽)ゞ
그녀는 안드로메다 진입 문턱에서 자신의 영혼을 던졌다 말았다...(-_-;;) 위험하다 싶어 그녀의 팔을 잡아끌어 시장에서 나가려는 참에 김 가게 아저씨가 말을 걸어옵니다.
김 가게 아저씨
아가씨들 뭘 찾는데?
네? (^^?) 김은 안 찾아요. 방긋~
표정이 무서워. 왠지 사야만 될 거 같아.
필요 없으면 필요 없다고 확실히 말하면 돼.
이 김은 돌김인데,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아 부피가 너무 큰가? 그럼 이 큰 걸 사서 집에서 알맞은 크기로 잘라먹으면 돼. 근데 잘못하면 누질 때도 있어. 편하긴 팩에 들은 게 편하지. 파래김도 있고 기름의 종류도 참기름, 들기름, 올리브유, 포도씨유 다양해~
팔랑팔랑팔랑~
팔랑 귀를 흔들며 어느새 두 손 모아 경청하고 있는 그녀와 나. (*´∀`*)(*´∀`*)
안돼 안돼 안돼~ Σ( ̄□||||
싸다 싸! 아가씨들 골라봐~
아니에요. 김은 필요 없....
그러지 말고 찬찬히 둘러봐
저기, 그러니까 우린... 김은.. 벼...별로... 필요 없...
아하핫...ㆀ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김 얘기에 압도당할 뻔했지만, 그녀가 옆구리를 콕콕 찔러 제정신이 돌아왔지요. 서울역 롯데마트에 가서 일본에 가져갈 김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차와 과자 등 군것질거리를 사고 나니 짐이 한 보따리. 이제 호텔로 귀환!
다음날, 그녀와 함께하는 넷째 날이 시작됐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와 TV를 켜니 미치광이 한 놈 때문에 남대문이 전소했다는 씁쓸한 뉴스가... 어떻게 다 타버릴 때까지 불길하나 못 잡았는지 아침부터 화가 나더군요. 그녀와 저는 침대에 앉아 어두운 표정으로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의 핸드폰이 띠링띠링, 또 연달아 띠리링 울립니다.
친구야?
회사 선배예요.
"남대문에 불 지른 게 너 아니냐?
네가 한국에 간 뒤 멀쩡했던 남대문에 화재가 난 게 이상해.
게다가 넌 현장에 있었고!" ...라는데요.? (。_。;)
너였어? 너였던 거야? ( ̄□ ̄;
흑... 국보 1 호인 줄 몰랐어요...(ㅠ_ㅠ)
NHK로 채널을 돌리니 남대문 화재 대서특필을 하더군요. 위성을 타고 세계 방방곡곡에~ 아, 나라 망신 제대로야... TV만 보고 있어도 기분만 다운되고 아점을 먹으러 호텔을 나섰죠. 그녀가 전부터 먹고 싶다는 간장게장을 먹으러 신사동으로 이동했습니다.
게는 참 맛있는 음식이죠. 게딱지에 밥 비벼 먹는 것도 일품이고요. 저의 최애 음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뭐랄까요... 먹는 동안의 불편함은...(-_-;;) 딱딱한 껍질 안에 부드러운 살을 파먹고 있자니 짜증이 나고, 그렇다고 껍질채 씹어 먹을 수도 없고, 정성스럽게 먹지 않으면 게살 반 이상을 버리게 되고, 불가피하게 손을 쓰게 되며 또 잔해물을 뱉어내야 하는... 정말 어떻게 해도 예쁘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에요Σ/( ̄□ ̄)/
그녀는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런지 위와 같은 애로사항이 있어서 그런 것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많이 못 먹더군요. 저는 맛있긴 했는데 먹는 게 불편해서 별로 안 먹은 것도 있고 첫 끼로 먹은 게 약간(?) 무리였는지도...
가게를 나와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걷기로 했어요. 이렇게 정말 추운 날씨에 게다가 둘 다 추위도 많이 타는데 왜 걷자고 했을까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급후회를...(;;;) 매서운 서울 칼바람에 그녀는 마치 살짝 데친 새우처럼 어깨엔 힘이 바짝, 등은 동그랗게 구부리고 오들오들 떨면서 걷고 있었죠.
춥지?
아니, 안 추워요!
에이~ 춥잖아~
춥다고 말 안 하기로 약속해서 참고 있는 거지?
첫날, 공항에서 "에~ 서울 추위 별거 아니네~ "라는 그녀의 발언에 밖에서 10분만 걸어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갈 거라고 말했던 저에게 내기하자고 그녀가 말했었거든요.
정말 안 추워요.. ㄷㄷㄷ
정말? 정말?
근데 왜 새파랗게 질려 있을까?
......
그녀의 손을 잡아 제 코트 속으로 넣으니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녀. 따뜻한 거보다 손을 잡아준 게 기뻤던 모양이에요. 어디를 갈까 하다 뜻하지 않게 롯데월드를 가게 됐어요. 롯데월드 입구에 있는 레드망고를 발견하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하향세를 타고 있지만(...), 일본에 없으니 들어가 보았죠.
토핑을 시럽, 콘프레이크, 후르츠 링, 마지막에 어떤 걸 넣을까 망설이고 있으니 알바생 어린(?)오빠가 일본 사람이 온 게 신기했는지 사람들 눈을 피해 "과일이 맛있어요. 원래 안되는데, 과일 몇 가지 조금씩 넣어 드릴게요! 비밀이에요" 라며 재빠른 손놀림으로 토핑을 얹기 시작.(^_^;) 덕분에 잘 먹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는 신맛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키위도 별로고 파인애플도 별로라고 하고 게다가 요거트 아이스크림이었으니 오죽 시큼했을까(ㅡ..ㅡ;) 게다가 춥다는 애한테 아이스크림을 먹였으니 사악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롯데월드에 들어가니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역시 인기 있는 어트렉션은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아틀란티스 한번 타보겠다고 수다를 떨며 1시간을 기다렸는데 탑승시간은 한순간. 그녀와 저는 허리와 목을 부여잡고 내렸죠.
근데, 나... 너무 튀지?
왜요?
여기 온 애들 말이야, 작정하고 나 놀러 왔소~ 하는 차림인데,
난 완전 치마 정장에 코트에 일하다 도망 나온 거 같아서...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또 그렇네요.
냐하하하...
그녀가 또 꽂혔다.. 이제 아래위로 훑어보며 실실 웃기 시작. 이 녀석이 최대의 적이었다(;;)
오늘따라 나 왜 이렇게 입고 나왔니?(-_-a)
여기 올 계획도 없었는데요 뭐. 괜찮아요~
cielo 겐차나요 겐챠나~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놀다 N타워에 예약해놓은 회전 레스토랑 N그릴에 갔어요. 창가 커플 자리에 예약했는데,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 자리를 안내하는데 우린 여자 둘인데 어떻게 해야 되나 망설이더라고요(^^;;) 뭐, 대충 앉았습니다.
메뉴는 바닷가재와 와규 안심 스테이크. 한눈에 펼쳐지는 서울 야경을 보며 여긴 어디 저긴 어디 설명을 하며 그녀와 로맨틱한 시간을 보냈어요. 일주하는데 2시간이 걸려서 딱 식사를 마칠 때쯤이면 원상태로 돌아와 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전망대보다 한층 높다고 야경이 조금 더 특별하게 보입니다. 연인과 한 번쯤 가기에는 좋아요.(두 번 가니 두 번째는 감흥이 별로^^;)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그녀가 동생에게 줄 기념품을 간단히 사고 밖으로 나오니 -7도여서 원래 추운 날이었지만 산 바람이 얼마나 춥던지 그야말로 살이 베여나가는 듯한 칼바람.
아~ 이번엔 진짜 못 참겠다.
추워!!!!!!!!!!
이겼다(-_-v)
그녀의 대단한 정신력... 네, 그래요. 당신이 이겼어요(。・ε ・。)
혀..혀가 안 돌아가서 발음도 제대로 안 돼~(ㅠ0ㅠ)
그러자 그녀가 뒤에서 꼭 안아주며 귀엽게 한마디 날려주더군요.
사란헤요(〃▽〃) ←한국어
호텔로 빨리 가요~♥
기록 : 이 글은 2009년 3월 30일 22시 51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cielo > [동성커플] 그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가 떠나고 다시 원거리 연애... (0) | 2020.06.06 |
---|---|
남겨지는 외로움 :: 마지막 날 (0) | 2020.06.06 |
그녀는 남대문 화재 현장에 있었다 :: 셋째 날 (0) | 2020.06.06 |
그녀를 보내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0) | 2020.06.06 |
운명의 사람, 그리고 드디어 오늘! (0) | 2020.06.06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