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염원(?)하던 호텔에 도착하니 그나마 남아있던 힘마저 샤르륵~ 빠지면서 정신과 몸이 분리되는 유체이탈을 잠깐 동안 체험했죠.
내일은 무리하지 말고 푹 자요.
많이 피곤하긴 했구나.
일어나고 싶어도 아마 못 일어날 것 같다...
불을 끄고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깜깜한 방,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나 했더니 옆에서 그녀가 큭큭 거리며 웃기 시작.
혹시... 너도?
강렬한 S씨가 눈에 아른거려 잠도 안 와요.
우리 가위눌리는 거 아냐?
그렇게 한참 대화를 주고받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르륵 잠이 들어버린 그녀와 나. 자다가도 나도 모르게 중간중간 헛웃음을 치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죠. 게다가 자면서도 반사적으로 웃는 그녀의 모습 또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 마치 S씨 바이러스에 감염돼 치료약을 찾다 찾다 못 찾아서 끝내 미쳐버린 두 사람 같았어요.
선잠만 자다 깊은 잠에 빠지나 했더니 띵동띵동 시끄럽게 벨이 울리지 뭡니까. "아~ 뭐야 졸린 데... " 잠결에 서로 나가보라며 발로 톡톡 건드리다가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가니 "룸서비스입니다" 라며 대기하고 있더군요.
아, 맞다! 자기 전에 아침 일찍 못 일어날 것 같아 방에 있는 조식 룸서비스 카드를 작성해 문에 걸어놨었지!
sereno 룸서비스래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
잠깐, 잠깐만요!
속옷차림의 그녀가 서둘러 바스로브를 걸쳐 입더니 다소곳하게 앉더군요.
휴~ 이제 됐어요.
몇 시간 못 잔 데다가 깊은 잠을 못 이뤄서인지 음식을 먹으면서도 꾸벅꾸벅~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피로에 쩔어 있었죠.
그만 먹게? 좀 더 먹어.
식욕이 없어서요. 나중에 먹을게요.
그러더니 바스로브를 벗어던지고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스르륵 눈을 감는 그녀. 저도 식욕이 없어서 그녀를 따라 다시금 잠을 청하려 했는데 갑자기 그녀가 몸 구석구석을 만지면서 괴롭히지 뭡니까(≧▽≦;
아~ 간지러워~ ヾ(  ̄▽)ゞ
cielo 주세요(〃▽〃) ←한국어
응?
챠기~ 하자 하자 (ノ∀`♥)
풉, 식욕은 없다면서...(;;;)
그녀와 LOVE한 시간을 보내고 같이 목욕을 하니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리더군요. 오늘 하루 슬슬 시작해 볼까!
준비를 하고 코엑스로 놀러 갔지요. 그녀의 친구에게 보낼 엽서도 사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속옷가게를 들어갔어가서 보일락 말락 약간 비치는 망사 슬립을 두 개 꺼내 들고 어떤 걸 살까 고민하고 있으니 그녀가 첫 번째 것이 제일 예쁘다며 밤에 이걸 입고 춤을 추라는 거예요(...) 야... 야메떼~Σ( ̄□||||
점심으로 그
녀는 비빔밥 저는 순두부찌개를 먹었는데, 제가 먹고 있던 순두부찌개가 궁금했는지 한입 먹어보고는 너무 맛있다며 그때부터(지금도) 순두부 예찬을 하고 있어요. (외국인 친구에게 순두부찌개를 먹이면 백발백중 맛있다고 합니다)
배도 불렀겠다 영화라도 한 편 보면 딱 좋을 텐데 한국어를 모르니 그녀가 재미없을 것 같고, 일본 영화는 마침 안 하고... 그래서 아쿠아리움에 갔지요. 매표소에 2인 요금을 딱 맞춰 내니 몇천 원 거슬러주며 '뽀뤼~너 디스카운트'라고 알아서 할인을 해주더군요. 핫, 난 외국인도 아닌데 땡큐~
그녀는 수족관을 참 좋아하는 거 같았어요. 물고기 이름도 종류도 잘 알더 군요. 이것저것 관찰하거나 신기하다며 손짓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좀 반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고 나오니 2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그녀와 정처 없이 걷다가 게임센터에 있는 스티커 사진을 발견!
오! 우리 스티커 사진 찍어요!
나 거의 10년은 안 찍은 거 같은데...
저도 한참 유행할 때 찍고 안 찍어봤어요.
그래 기념인데 한 장 찍자.
동전을 넣고 스타트!
딱딱하게 굳은 몸, 어색한 표정으로 지시에 따라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꽤 힘들더군요. 찰칵찰칵 촬영이 끝나고 꾸미기 판으로 이동하여,
이렇게 많이 진화한 거야? 옛날에는 이런 거 없었는데...
정말 많이 변했네요.
근데 뭐 눌러야 돼요? 한국어로 나와서 모르겠어요.
잠깐만, 이건가?
이거요?
아니야 아니야. 그거 말고...
이미 눌렀다. 그건 결정 버튼이었다( ̄□ ̄; 꾸미기 없이 끝났다. 온통 파란 배경에 상기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와 나... 하트라도 하나 넣고 싶었다 (ㅠ_ㅠ)
엇, 이게 뭐야? 끝난 거예요?
핫... 엇! 보너스 나왔네. 이거 꾸미자.
보너스 시간 180초였다. 스티커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들은 날짜도 넣고 스탬프도 찍고 반짝반짝 별에 샤방한 하트에 온갖 잡스러운 것을 다 넣는 데 반해, 그녀와 나는 뭐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만 해도 한잠 걸렸다. 메뉴 공부만 했다. 180초 다 갔다. 사진 8장 합쳐 다 파란 화면이다(...)
그녀와 저는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 완성된 스티커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허억, 정말 파란 배경밖에 없....
우리 스티커 사진 왜 찍은 거야?(ㅜ_ㅜ)
스티커 사진 찍은 의미가 없네요.
증명사진보다 더 무서워...
그렇게 기념이 될 첫 번째 스티커 사진은 보란 듯이 실패로 돌아갔어요.
우리 나이 너무 많이 먹은 거야?
왜 이런 간단한 기계 조작도 못 따라가는 건데? (-0-?)
기계가 이상한 거예요!
우린 아직 젊어요.
그래그래...
그리고 그 이상한 사진을 가지고 호텔로 귀환했죠. 그녀가 서울에 오기 며칠 전에 생일이어서 호텔 베이커리에 생일케이크 쿠폰으로 예약해놓은 케익을 찾아 조촐하게나마 생일 파티를 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사진과는 전혀 다른 케익이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닙니까! 갑자기 기분이 팍 상하는... 어차피 받아온 것이니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죠~
고맙다며 환하게 웃는 그녀. 그녀가 기쁘다는데 케익 조금 다른 게 문제더냐! 둘이 먹기에는 너무 크다 싶었지만, 맛있게 먹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한입 맛을 보니 바로 욕이 나오더군요! (-_- ;;)동네 빵집보다 못한 수준... 완전 실망! (돌아와서 한마디 했습니다)
어제부터 뭔가 꼬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그나저나 S씨한테 연락이라도 올 줄 알았더니 깜깜무소식. 뒹굴뒹굴 거리다 7시에 예약해 놓은 한정식집 용수산으로 고고!
우리 맹박이가 국정 운영을 하도 잘해서 지금은 때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보다 그녀가 옆에 시계를 너무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구입처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려요 (_ _;;)
아무튼 요리에 대해 설명도 하면서 느긋하게 먹고 나니 종업원의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냐'는 물음이 외국 사람인 그녀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지금까지 먹은 건 식사가 아니에요?
한국에서 식사라 하면, 국이나 찌개에 밥을 먹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지.
가볍게 면이나 죽도 좋고...
그렇게 먹고도 또 먹다니... 대단해!
그리고 면이 가볍나요?
남자 중에 면은 간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어 (_ _;;)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
냉면과 밥, 디저트까지 다 먹고 일어서니 9시가 다 되어가더군요.
아아~ 친구가 BB크림 부탁했다고 했나?
명동은 9시부터 문 닫기 시작하니까 빨리 가면 살 수 있을 거야.
꼭 오늘 안 사도 되는데...
피곤한데 무리하지 말고 내일 사요~!
또 나오기 귀찮잖아~ 가자!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명동으로 가니 9시가 넘어 뜨문뜨문 문을 닫은 가게들로 한산한 느낌이더라고요. 서둘러 BB크림을 구입하고 명동엔 볼거리가 없어 남대문으로 이동했어요.
"역시 한국에 왔으면 남대문은 한 번쯤 봐줘야지!"
하지만, 이게 웬일인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남대문에 불이라니...
잿빛 연기를 뿜으며 힘없이 불타는 남대문을 보고 있자니 망연자실해서 그녀와 저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어요.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죠.
어떻게 이런 일이...
언니B에게 남대문에 관한 문자 메세지가 와서 전화를 걸었죠.
언니B
너희 남대문 간다고 하지 않았었니?
지금 TV에서 남대문에 불났다고 난리도 아니야.
언니, 나 지금 남대문이야.
지금 왔는데 깜짝 놀랐어...
정말이야? sereno가 왔을 때 딱 이런 일이 생기니...
기대하고 갔을 텐데 실망했겠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왜 불이 났대?
아직 모르겠어. 왜 그런 건지 나오면 연락해 줄게.
전화를 끊고 남대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숨만 내쉬었죠.
cielo 괜찮아?
응, 괜찮아.
아니 사실 충격받은 거 같아...
털썩... 이번 여행, 순탄치 않은걸... 하휴~
기록 : 이 글은 2009년 3월 26일 22시 45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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