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고도 2개월이 지나 벌써 3월 초가 됐네요.
블로그 갱신이 없는 동안에도 코멘트를 남겨주신 분들도 계셔서 근황을 전해드린다고 해놓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크흑...(TㅂT)
2020년 10월에 마지막 포스팅이었는데, 그간 저희 커플의 소소한 일상 중에서 기억에 남는 하나가 바로!! ‘커플 반지’를 맞췄다는 겁니다!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서로에게 선물 받은 각각의 다른 반지를 계속 끼고 있었는데, 사귄 지 14년이 돼서야 같은 반지를 드디어 끼게 되었네요.
사실 2013년에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반지 얘기는 나왔었는데, 결혼하면 그때 맞추자고 미뤄뒀다가 다시 얘기가 나온 게 파트너십 선서를 한 다음부터였어요.
하지만 둘 다 절박하지 않으면 잘 안 움직이는 성격인지라 인터넷에서 반지 디자인 보다가 여러 가지 선택지가 나오게 되면 귀찮아서 그냥 말아버리고 다음으로 미루고…
안 되겠다 싶어서 5000일 기념으로 맞추자고 했는데,
반지를 맞추는 걸 까먹은 게 아니라 5000일이 된 것을 홀랑 까먹고 말았지요. ┓( ̄∇ ̄;)┏
반지 맞추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요?;;
이러다 평생 못 맞출 거 같아서 그녀에게 얘기를 꺼냈습니다.
cielo
안 되겠다.
반지 맞추자!
sereno
어디서?
어떤 디자인?
자기야... 날 뭘로 보고!
당연히!
생각 안 했지...(-_-a)
끄응...
깊이 생각하면 또 미뤄진다.
매일 끼고 있어도 안 질리는
가장 심플한 플래티넘 링.
그러자,
이런저런 브랜드를 알아보려고 하는 그녀...
보지 마.
집에서 젤 가깝고 반지로 가장 무난한
까르띠에에 가면 돼.
에엣…
완전 좋은 생각이잖아!!( ´ 艸 ` )
코로나 때문에 방문객 제한이 있을지도 모르니
예약 하자.
그래서 인터넷으로 방문 예약 시작!
챠기~
반지 용도를 고르는 게 항목이 있는데,
뭘로 해요…?
일본에서 '동성 파트너십 선서'도 하고 나름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동성 결혼이 가능한 나라에서 결혼을 하거나 한국 또는 일본에서 드라마틱하게 동성 결혼이 허용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 희망과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약혼반지'로 해~
그리고 예약 당일,
신사이바시에 있는 까르띠에에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일단 매장 앞에 도착은 했으나, 고객보다 가드와 매니저들이 더 많아 "난 여기에서 물건을 꼭 구매하겠다!"란 의지가 없이는 가볍게 들어갈 수 없는 분위기...;
소심한 그녀와 저는 나름 긴장하며 서로의 등을 떠밀며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드에게 예약을 했다고 하니 담당 매니저가 나와 매장 한편에 있는 bar로 안내하더군요.
바텐더가 샴페인을 한잔씩 건네며 가볍게 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전이라 매장에 1.5층 높이의 대형 트리도 장식되어 있어 분위기도 좋고 취기도 살짝 도는 게 슬슬 텐션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상술이 너무 좋구나~
오늘은 구매 각이 나온다... ̄∀ ̄*)
샴페인을 반잔 정도 마셨을 때 담당 매니저가 반지 코너로 안내하겠다고 하여 2층으로 이동~
일단 개별 상담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후 쇼케이스 쪽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반지를 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약혼반지라고 해서 그런 걸까요...?
.
.
.
담당께서 수천만 원에서 억 대를 호가하는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마구 보여주십니다...Σ(゚∀゚ㆀ)
딱 봐도 1캐럿을 족히 넘을 듯한 반지들...
찬란한 다이아몬드의 눈부심과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가격에 여러모로 실명 직전~ヾ(  ̄▽)ゞ
그녀와 저는,
'놉! 우리는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라 심플하고 평소에도 계속 낄 수 있는 디자인'이라고 말하니, 의도를 잘~ 파악하시고 원하는 디자인 쪽으로 안내를 해주시더군요.
방금 전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반지를 봐서 그런가요?
백 단위는 너무 저렴해 보이는 매직이 발동합니다. (* ´∀ ` *)
.
.
.
"몇 백쯤이야..."
일단 몇 가지 디자인을 쇼케이스에서 꺼내 보여주셨어요.
약혼반지를 맞추겠다며 여자 둘이 와서 반지를 보고 있으면 두 명 다 당사자인지 한 명만 당사자인지 궁금할 법도 한데, 정말 너무 자연스럽게 저희 둘에게 사이즈 별로 반지를 내어주셨지요.
어딜 가면 우리의 관계에 대해 누구에게 설명을 해야 하거나 동성 커플인 것을 알았을 때 상대방이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연히 교육도 받으시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상황이 좋았습니다.
일단 후보를 4개로 추려 개별 테이블로 가져와 고민하기 시작했죠.
자그만 다이아가 있는 반지, 로고가 있는 반지, 로고와 약간의 곡선이 있는 반지,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반지...
다이아는 하나만 있으면 심플하고 좋을 거 같은데~
로고가 너무 커도 좀 그렇고...
너무 심플하면 차별화 포인트가 없고...
.
.
.
담당께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지만, 무엇보다 샴페인을 다 비우기가 무섭게 빛의 속도로 "다음은 뭘로 드시겠냐"며 무한대로 제공할 기세...
한잔 술에 얼굴이 빨개진 그녀를 보며 귀엽다고 말하는 담당 언니(?)는,
(그치, 그녀가 귀엽긴 하지...(・∀・)ㅋ )
이제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그녀에게 어떻게든 음료를 제공하려는 의지가 아주 돋보였습니다.
bar에 온 줄 착각할 정도...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드디어 그녀와 저의 커플링이 결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지 안쪽에 cielo♡sereno070930 각인을 넣어달라고 신청~ (물론 본명으로...)
하트를 넣으니 쑥스럽기도 한데, 오래간만에 풋풋해서 좋았습니다.(ノ∀`♥)
<반지 수령 후 이야기>
반지를 맞추고 나니 감회가 새록새록합니다.
같은 반지를 끼우고 있는 그녀가 더 예뻐 보이기도 하고, 묵직한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지고...
사실 이전(이미 십수 년 전)에 사귀었던 사람들 하고는 100일 정도 되면 커플 반지를 맞춰 끼곤 했는데, 그땐 별생각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까지 기뻤나 싶기도 하고... 그녀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고 하니 내심 기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sereno
근데... 우린 커플 반지를
왜 14년 동안이나 안 맞춘 거였죠?(ノ_・。)
cielo
몰라...
우린 좀 의미불명인 거 같아...그치?  ̄∀ ̄*)
근데 오늘 아침에 반지 빼고 갔더라?
난 자기한테 받은 반지를
금속이 안된다고 하는 건강검진 때 빼고는
한 번도 뺀 적 없어!
여기 14년 동안 계속 끼우고 있어서
손가락에 하얗게 반지 자국 난 거 봐봐~Ψ(` ◇ ´)Ψ
회사에서 손을 많이 쓰는데 계속 상처가 나서
뺐다꼈다 하면 잃어버릴지도 모르고...
난 14년 동안 봉인됐고
또 새롭게 봉인됐는데
자기는 이런저런 이유로 잘 빠져나가는구나.
그 말투...
봉인이라니...!ヽ( *` Д ´ )ノ
반지는 그런 의미인 거야 ㅋ
4번째 손가락에는 연인 사이를 방해하는
마물이 살고 있어서 녀석을 봉인해야
원만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라고~ ┓( ̄∇ ̄)┏
...정말?
소설 쓰는 거 아니고?
게임 얘기도 아니고?( ╬。_。)
그럼 난 14년 동안 주말에만 꼈는데도
계속 봉인 상태면 더 위함 한 거 아닌가?
자력 봉인 ╬ ゚ Д ゚ )
나 뭐야?
...나란 늪에 빠진 거겠지
푸흡(ノ∀`♥)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그냥 반지를 끼고 회사에 가더군요.
반지에 난 상처도 다 둘이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라며 빼지 않고 있어요...ㅎㅎ
그리고 저희 회사에서는,
안 그래도 오지랖 장난 아닌 우리 대표님과 본부장님이 갑자기 반지가 바뀌어서 궁금해하는 눈치인데, 물어봐도 될지 안 될지 고민하며 저에게 뜨거운 눈빛만 보내고 계십니다.
그녀의 회사에서는,
평소 반지를 안 끼고 다니던 그녀가 반지를 끼고 다니니 과장님이 엄청 궁금해했었나 보더라고요.
며칠이 지나 그녀와 과장님이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슬쩍 다가오더니,
과장님
sereno 씨,
그 반지 남자 친구한테 받은 거예요?
sereno
네, 뭐... 대충 그런 느낌...?
남자 친구랑 오래 사귀었어요?
네, 뭐... 대충 그런 느낌...?
아...
ㅋㅋㅋ
그녀의 말로는 어깨를 넘길 정도로 머리도 기르고 갑자기 새로운 반지도 끼니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계신 거 같더래요.
'결혼'
남들 다 하는 결혼인데,
그래, 결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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