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을 설쳐서인지 일어나니 미친듯한 피로가 몰려오고...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하니 긴장한 탓에 '으윽' 배도 슬슬 아픈 상태. 슬슬 준비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했어요. 연휴라 그런지 공항은 대혼잡 상태였죠.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탑승하니 한국어에 이어 일본어로 승무원 안내멘트가 나왔는데, 이게 참 언제 들어도 웃겨요. 운항(運航)은 일본어로 '운코우'라 하는데, 승무원들이 꽤 많은 비율로 '운코'라고 장음을 발음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운코는 똥(-_-a)이란 뜻인데 말이죠.
...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대한해협을 넘어 큐슈에 진입. 서울에서 1시간도 채 안 되는 비행시간 때문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후쿠오카에 도착해버렸어요.
그녀와 약속시간이 저녁 6시여서 전날 후쿠오카에 사는 일본인 친구 M짱과 반나절 정도 만날 약속을 했었습니다. 친구는 고맙게도 공항에 마중 나와 주었고 M짱의 차에 올라타 후쿠오카 시내로 향했죠. 호텔 체크인이 2시 넘어서였기에 그동안 브런치라도 먹으면서 놀기로 했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흐린 날씨.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브런치를 먹으려던 장소에 도착하지 않는 거예요. 낯익은 풍경이 무한 리피트 되고 있던 상황.
cielo
저기, 같은 풍경을 몇 번이나 본 거 같은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친구M
아하하.. 걱정 마. 곧 도착해~ 도착한다니까~~
하지만, 정말 너무너무 걱정됐어요. 왜냐하면...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고 있었거든요(_ _;;) 오래간만에 친구와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지만, 내비게이션을 보면서도 이렇게 헤매었다면...
이 녀석 너무 위험하잖아(-0-;;)
정말 도착하긴 도착하냐~? (-ㅁ-;;)
그렇다니까....ㆀ
그 후 30분 정도 같은 길을 계속 헤매다 갑지가 친구가 환한 미소를 띠며 천 년 동안 묻혀 있던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떠들썩하게 소리쳤죠. "찾았다!"... 정말 우연히 찾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하며...
어쨌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한숨 돌리며 친구의 핸드폰을 빌려 그녀에게 전화를 했어요.
여보세요~ 나 도착해서 친구랑 점심 먹으러 왔어.
그래요? 저도 지금 가는 중이에요.
제시간에 도착할 거 같아요.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조심해서 와.
그럼 이따 봐요~
식사와 술을 주문하여 먹고 마시며 친구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는데, 그녀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던 터라 평소 때와 달리 친구와의 대화가 대뇌부까지 전달되지 않고 귓등으로 솔솔~빠져나가는 느낌. 긴장도 풀 겸 주문한 진토닉은 너무나 엷어 당최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거예요. 마스터에게 진을 아낌없이 넣어달란 말을 하고 석 잔째가 되어서야 슬슬 취기가 돌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죠.
체크인 시간이 다 되어 호텔로 출발했어요. 짐을 풀고 다시 번화가 텐진으로 이동하여 백화점도 둘러보고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으며 그녀와 만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죠. 짹깍짹깍... 시간은 흘러 5시 반이 되었고 친구는 저를 하카타역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간다고 하여 친구의 차에 다시 올라탔답니다.
설마 또...
아니야. 여기에서 금방이야. 쭉 직진하면 돼.
정말 친구 말대로 헤매진 않았지만, 심한 정체에 발이 꽁꽁 묶인 상태... 약속시간이 다가와 점점 다급해지기 시작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죠. 역 진입로가 두 갈래 보였고 친구는 거침없이 택시 승강장 진입로로 들어가 버렸어요...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침묵을 지키다 안 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먼저 가겠다고 오늘 정말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내렸어요. 시간을 보니 6시 20분. "아아~ 첫 만남에 지각이라니... 최악이다!" 그리곤 역 안으로 돌진하여 요시노야를 찾기 시작했죠.
역이 꽤나 커서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어요. 시간은 점점 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기둥 한쪽에 붙어 있는 오렌지색 요시노야 이정표를 발견하게 됐어요. "휴~ 다행이다!" 이정표를 따라가니 좁은 통로 사이로 KFC와 요시노야가 보였고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고 한발 한발 다가갔지요.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후덕한 웃음의 KFC 할아버지 말곤 아무도 없는 거예요. 눈앞이 깜깜했죠.
"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 아니면 "역시 생각해보니 만나는 건 별로였나?"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났어요. 기다려도 그녀가 오지 않아 전화를 해야겠단 일념으로 공중전화를 찾아도 요즘 다 핸드폰을 써서인지 공중전화 찾는데도 한나절. 게다가 동전이 없어서 자판기를 찾으러 또 이동. 담배를 한 갑 사고 남은 동전으로 그녀에게 전화했습니다.
지금 어디야? 요시노야 앞에 갔었는데 없어서...
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어요.
지금 어디예요? 그쪽으로 갈게요.
늦어서 미안.
아니, 여기 말고 나도 요시노야로 갈 테니까 그쪽으로 와 줘.
전화를 끊고 다시 요시노야 앞으로 갔지요. "하긴, 여기에서 혼자 30분 이상 기다리기 쪽팔렸겠지. 푸흡~ 그 마음 나도 알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엇?!' 저 멀리서 그녀라 생각되는 사람이 이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캬악.....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기록 : 이 글은 2009년 2월 20일 18시 17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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